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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년 동안 동학, 민경, 승현, 종수, 윤서, 승진, 장율, 혜인, 태겸, 가희, 시온, 은중, 정연, 푸름, 수미, 지원, 수연, 나영 18명 학생이 생활합니다.
부족한 것이 많지만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봐 주십시오.
감사합니다.
이순신장군의 업적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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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 | 이푸름 | 등록일 | 17.02.15 | 조회수 | 69 |
-1545(인종 1)∼1598(선조 31). 조선 중기의 명장. -1592년 4월 13일 일본의 침입으로 임진왜란이 발발되었음 -옥포대첩으로 그의 최초의 해전으로 기록됨 -옥포해전이 있던 다음날에는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중인 왜선 13척을 쳐서 불태움 -5월 29일 그는 거북선을 앞세우고 23척의 전선으로 여수항을 출항함 -조선수군은 곧 일본수군이 정박중인 사천으로 달려감 -작전계획은 적중하여 왜선 12척을 파괴하고 많은 왜군을 섬멸함 -이 싸움에서 최초로 출동한 거북선의 위력은 확고한 인정을 받음 -6월 2일 왜선이 당포에 정박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그는 곧 그곳으로 달려감 -일본수군들은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수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대패하고 왜장 구루시마가 전사함 -5일 아침 전선 51척과 중·소선 수십척의 연합함대는 일제히 거제로 향함 -당항포 내만에는 왜의 대선 9척, 중선 4척, 소선 13척이 정박 중이었음 이 싸움에서 왜군은 대패하였고 왜선은 모두 소실됨 -7월 6일 전라좌·우수군이 일제히 출동한 뒤 노량해상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전선 7척과도 합세함 -그는 약간의 판옥선으로 일본의 수군을 공격하면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을 쳐 일제히 총통을 발사하는 등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층각선 7척, 대선 28척, 중선 17척, 소선 7척을 격파함 -한산대첩 후 그는 다시 전진하여 안골포의 적선을 격파함 -그는 왜침의 교두보인 부산포공격의 결단을 내림 -이 싸움에서 적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음 -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겨 본영으로 삼고, 그 뒤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됨 -1597년 명·일 사이의 강화회담이 결렬되자, 본국으로 건너갔던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남 -그러나 그는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모략으로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음 -도원수 권율의 막하로 들어가 두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됨 -원균이 적의 유인전술에 빠져 거제칠천량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함으로써 그가 힘써 길러온 무적함대는 그 형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됨 -통제사에 재임용된 그는 남해 등지를 두루 살폈으나 남은 군사 120인에 병선 12척이 고작이었음 -8월 15일 13척(일설에 12척)의 전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하여 31척을 부수는 큰 전과를 올림 -1598년 11월 19일 그는 노량에서 퇴각하기 위하여 집결한 500척의 적선을 발견하고 싸움을 기피하려는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을 설득하여 공격에 나섬 -일본군은 많은 사상자와 선척을 잃음 -그는 애통하게도 적의 유탄에 맞음 -그는 글에도 능하여 『난중일기』·시조 등의 뛰어난 작품을 남김 -저서로는 『이충무공전서』가 전함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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